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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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실마을 뒷산에 자리한 용문사는 소백산 자락에 위치해 있습니다. 크고 새로 세운 일주문을 차량으로 지나면 주차장 왼쪽으로 난 산사로 가는 길에 기존의 일주문이 서 있습니다. 산사라는 것이 검박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유치하지 않은 즉, 김부식이 백제문화를 평한 '검이불루 화이불치' 라는 평이 가장 적합한 곳이 사찰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창건한지 천 여 년을 넘긴 고찰이면서도 최근래 와서 불사를 다시 일으켜 법당을 비롯한 요사체를 신축하거나 일주문을 세우고 진한 원색으로 문양을 그려넣기도 하고 또는 석탑을 크게 세우기도 하는 것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지만 전통 불교와 상당한 거리감이 있을 법한 중국 도교풍의 석상 조형물을 세운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불사가 아닌가 생각하게 합니다.
일면 사찰이라는 것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도하고 사상의 주류에 따라 현실적인 부분과 타협하는 그런 생활불교적 전환도 있어야 할 것이지만 너무 지나친 불사를 일으키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는 한번쯤 깊게 고민해야 할 듯합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차차 기록할 것이고 일단 사찰에 왔으니 절구경이나 하겠습니다.
일주문을 포함해 삼문을 지나야 법당 본전에 발을 디딜 수 있는데 첫번째 관문인 일주문(도로변에 새로 세운 큰 일주문이 아닌 소박한 기존의 일주문)에는 소백산용문사라 쓴 현판이 걸려있어 불가 세계에 들어왔음을 알리고, 본전과 일직선상에 자리할 사천왕문은 특이하게 회전문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사천왕상을 모신 회전문은 이 사찰이 윤장대를 소유한 사찰이라 사천왕문이라 하지 않고 회전문이라 현판을 내 걸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사천왕상을 모신 회전문 벽면에는 사천왕상을 벽화로 그려 놓았고 거대한 사천왕상을 모신 전실에는 방향에 따른 상징적 악기나 기구 또는 병장기를 들고 있음으로 인해 불국토 사방을 지키는 파수꾼역할의 사천왕을 구분할 수 있게 합니다. 비파를 연주하고 있거나 긴 칼을 들었거나, 용과 석탑을 든 사천왕 또는 삼지창을 든 사천왕상의 무서운 눈부라림으로도 충분히 불국토 지킴이가 되고도 남습니다. (다른 사찰 사천왕상에 비해 온화한 사천왕이 자리하고 있음)
회전문을 지나면 만세루에 해당하는 누각을 지나가는데 누각 이름은 별도로 걸어놓지 않고 다만 소백산용주사라 쓴 현판만 보입니다. 만세루 누각 밑을 지나면 이 사찰의 본전 마당에 올라 설 수 있습니다. 보광명전을 중심으로 양 옆에는 세운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삼층석탑일 것 같지 않은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보광명전에는 지권인 자세를 한 비로자나불을 모셔 용문사가 선불교 사찰임을 어림짐작할 수 있습니다.
보광명전 옆에는 대장전(대웅전이 아닌 대장전임)이 자리하고 있는데 짧은 불교지식으로는 대장전에 어느 부처님이나 보살님을 모셨는지 잠작조차 할 수 없지만 법당 안 양쪽에는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윤장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윤장대와 맞배지붕을 한 대장전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어 보호를 받고있는데 그 유명한 소백산용문사 윤장대입니다.
윤장대는 티벳불교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윤장대를 한 번 돌릴 때 마다 그 어렵고 긴 불경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하니 일자 무식의 무지랭이나 팍팍한 세상살이에 경전 읽기를 생각지도 못할 중생들에겐 복음과도 같은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그러니 절에 자주 들를 형편도 못되지만 생각날 때마다 방문하면 너나 나나 할 것없이 윤장대 돌리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세월의 무상함을 이기고 잘만 돌아가던 윤장대도 국보로 승격된 고귀한 문화유산이 되다보니 그저 지켜 바라만 봐야만할 유물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도 금지한다는 안내문구에 양심상 사진도 찍지 못하고 눈으로만 간직합니다. 오늘 하루 유심히 눈도장으로나마 윤장대를 바라봤으니 불경경전 열 번은 읽은 것으로 간주해 주실 것을 간곡히 바랄 뿐입니다.
한편 새로이 창건된 절에 가면 대형 윤장대를 옥외에 설치하거나 본전 외벽을 따라 작은 원통형 윤장대를 설치하여 돌리며 법당 한 바퀴를 돌도록 만든 사찰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소백산용문사에서 본 이질적 구조물이라 한 것은 다름아닌 보광명전과 대장전 중간 쯤에 자리한 복 많고 인심 넉넉할 것 같은 얼굴 형상을 한 부조물에 대해 도가적인 풍이라 평가한 것입니다. 불교 지식이 일천하여 잘못 알고 지적질 했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